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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죽음과 노화에 관하여 -3] : 산다는 것의 본질은 무엇인가

by 수학댕댕이 2020. 12. 3.

[죽음과 노화에 관하여 -3] : 산다는 것의 본질은 무엇인가

 

1. 대학교 입학하고 20대 초반, 수학뽕이 가득 차있던 나는 이 세상에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많이 던졌었다.

그중에서도 굉장히 추상적인 세계라던가 인식, 본질, 언어 이런 것들이 굉장히 궁금했다.

그러나 내 멍청한 뇌로는 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없었는데 그렇다고 또 공부를 열심히 찾아서 하는 편도 아니라서 철학과 수업도 제대로 하나 안 들었었음. (그 시간에 여자친구랑 야스를 한판 더 하고 말지.)

 

 

 

2. 그러다가 앞 글에서 말한것처럼 20대 초중반에 여러가지 죽음과 노화를 눈앞에서 보고나서, 내 안에서 떠오르는 질문들이 하나 둘 바뀌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질문을 원래

 

"이 수학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본질은 무엇인가? 혹은 우리가 그런 진리에 도달한다는게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뭐 이런 개똥철학 질문을 했었다면, 어느순간부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옛날 사람들과 요새 사람들은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비슷할까? 사람은 왜 그런 행동을 할까?"

 

이런 것에 좀 흥미를 가기 시작했다.

관심사가 이 우주나 세상으로부터 인간사회로 넘어온 것이다.

죽음이라던가 하는것들이 눈 앞에서 너무 아른거리니깐.

그게 좀 두렵기도 하면서도 내가 이 세상에 대해서 하나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거는 다소 인문학적인 주제인데 나는 당시에 좌파,우파 이런 단어가 뭘 말하는건지도 모르는 인문학고자였다는 거.

2015년은 바야흐로 인문학이 유행하던 시절이였고 시중에는 인문학에 관한 서적들이 정말이지 넘쳐났다.

그런데 그런 책들은 전부 다 나한테 너무 어려웠음.

 

 

일단 나는 그냥 옛날 사람들한테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처음 시작한게 바로 [응답하라 1988]을 본 것이였다.

겁나 촌스럽네 진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삶과 죽음, 인간사회에 대해서 성찰한다는 것은 나름대로 인문학공부를 한다는 것인데 무슨 그걸 드라마로 하고 앉았냐.'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자유vs평등의 가치가 각각 뭘 말하는지에 대해서는커녕 민주당이 좌파인지 우파인지도 몰랐다는 거.

 

[응답하라-1988]은 1988년 시대를 배경으로 한 20부작 드라마이다.

특히 이걸 엄마가 정말 재밌게 봤다고 하길래 나는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엄마. 실제로 저때는 세상이 어땠어?"

 

실제로 여기 안에서 있었던 일들도 꽤 비슷하게 있었다고 하더라.

예를 들면 그 시절엔 요리를 한번 했다하면 옆집 사람들것까지해서 다 나눠먹었다고 함.

애초에 요리를 하기전에 시장을 볼때부터 재료를 준비할때 옆집 사람들 숫자까지도 다 생각을 해서 한다고 한다. 그냥 엄마 살던 시절에는 그러고 살았다고.

 

그 이후로도 나는 옛날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나오고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을 만나면 한번씩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본다.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전쟁이나 일제시대 상황이 어땠는지 물어보거나,

아니면 시대가 이렇게 좋아졌는데 기분이 어떻냐거나.

그 외에도 예전에 길거리에서 깡패가 돌아다니던 시절 이야기를 아는 아저씨에게 듣는다거나

교수님이 예전에 과외하던 시절에 소주나 담배 물가가 거의 300원 1000원 이랬던 이야기 들으면 꽤 꿀잼이다.

 

 

 

4.  [응답하라-1988]은 나에게 매우 인상적이였다. 약간의 픽션이 가미되어있겠지만은 그 시절 나름대로 사랑도 찾고 삶도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애환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걸 보면서 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사는 세상은 예전이나 그전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덕선이가 어린 마음에 어른들의 화장을 따라하는 장면이 참 볼수록 웃기다. 지금 보면 그렇게 촌스러운데, 당시에는 나름대로 이뻐보이고 싶은 마음에서 하는것 아니겠나. 

우리는 그걸 멀찌감치 떨어져서 쳐다본다.

 

"ㅋㅋㅋ화장 촌스러운거 보소."

"귀엽넹ㅋㅋㅋ웃기당."

 

마치 그 시절에 있는 사람들과 우리는 크게 다르다는 듯이 말이다.

물론 그 시절과 현재는 다르다. 넘사벽으로 다르다.

우리는 그 시절보다 훨씬 더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

 

훨씬 더 깔끔한 버스와 지하철.

아날로그를 벗어나고 디지털을 지나 스마트폰의 세상.

어디서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와이파이.

엄청나게 증가한 평균소득. 그래서 고기반찬이나 아이스크림이 그렇게까지 귀하지 않게 된 것.

그나마 조금은 사라진 미개한 똥군기.

그리고 극중에 나온 덕선이보다 훨씬 더 깔끔해보이는 2020년의 화장기술들. 

 

등등.

 

마치 멀리서 원시인 보듯이 쳐다보고 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보자.

과연 우리가 그들과 같은 시대에 태어났다고 가정하면, 그래도 우리가 그들보다 더 세련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지금 2040년에 어떤 아이가 2020년의 우릴 보면서 웃고 있을 우리의 미개함은 어떤 부분이란 말인가?

당신은 그것을 지적해낼 수 있겠는가?

 

 

 

 

 

5. 1988년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먼과거로 돌아가도 뭔가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는 것 같더라.

 

몇년전 스페인 학회가서 잠깐 들린 박물관에서, 먼 옛날에 그려진 그림들을 봤었다. 

 

정원에서 노는 사람들

저들이 신나게 놀고 있는것을 보니깐 그냥 요새나 지금이나 뭔가 즐겁고 신나는 뭔가를 찾으려는 인간의 본성은 여전하다고 생각들었다.

 

스페인박물관에서 본 어떤 아재 초상화. 본인 훈장을 달고 자랑중임.

그 박물관에는 훈장을 여러개 달고 있는 어떤 사람의 초상화도 있었다. 난 이 사람이 이름도 모름. 그리고 관심도 없다. 그리고 아마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관심이 없을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이 이 그림을 그리면서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본인의 엄청난 지위와 업적을 영원하게 그림으로 남기고 싶어했던게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어느정도 성공한 것 같다. 몇백년 뒤의 사람인 내가 이렇게 보고 있으니.

막상 그 업적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무 관심이 없기는 해도 말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어떤 본질적인 것들이 있다.

 

그것이 바로 사랑, 예쁘고 잘생김을 추구하는 생물학적 본성, 재미나고 신나는 것을 찾으려고 하는 본성, 남들과 비교하는 마음, 본인을 알리고 싶어하는 마음, 그리고 죽음 등등이다.

 

그리고 이것들을 거의 다 생물학적인 본성과 한계와 맞닿아있다.

 

나는 이것이 이 세상을 관통하는 진리의 한 축이라고 생각한다.

 

 

 

 

 

 

 

6.

"산다는 것의 본질이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답은 잘 모르겠다. 아니, 애초에 이 질문이 의미가 있는 질문인지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엉터리 질문일지도 모른다. 본질같은건 애초에 없을지도 모르고, 다른 관점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여기서 내가 자신있게 믿고 있는 것이 하나 잇다.

 

나는 요새 위와 같은 생각을 많이 한다.

어설프게 사상을 통해서 이 세상을 비추어 보려고 하는것은 그다지 본질을 관찰하는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시대마다 각자 나름의 전쟁을 하고는 있지만, 일단 훨씬 더 Fundamental 한 구조가 인간 내부에 있다.

그것이 바로 삶과 죽음에 대한 이슈이다. 나는 이것을 산다는것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2020년 기준으로 이 세상은 나름대로 꽤 그럴듯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건강하게 태어났다면 세상이 꽤 괜찮다고 느껴질 것이다.

 

적절한 수준의 최저임금을 보장받으면 그게 많든 적든 일단 적당히는 먹고 살 수 있다.

어떤 나라는 쌀밥에 고기반찬을 먹는게 소원인 곳도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많은 대학생들이 아메리카노를 즐길 수 있으며, 넷플릭스나 유튜브 역시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

물론 그만큼 미래에 대한 불안은 이전세대에 비해 더 커졌다고도 볼 수 있지만,

당장 곧 다가올 죽음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 비할 바는 아니다.

잊지말자. 이 세상을 보면 죽음은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죽음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나는 이 기나긴 세월의 한 점이고, 젊은 나도 이제 얼마 안 있다가 곧(?) 죽을 운명이다.

내가 앞으로 우리 할아버지 나이가 되기까지 70년도 남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얼마 안 있다가 늙어서 더이상 걷지 못할 나이가 올 것이다.

그리고 지금 늙어서 더 이상 걷지 못하던 사람들도 모두 우리처럼 누군가를 사랑했고,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고, 욕심부리고, 게으름부리고,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고, 그랬던 순간이 있다.

그 시대는 그냥 지나갔을 뿐이고, 우리의 시대도 곧 지나갈 것이다.

 

나는 스페인에서 본 그림들에 등장하는 이미 죽어버린 그 옛날 사람들, 그리고 지금 늙어가고 죽어가고 있는 현재 사람들이 나와 크게 다르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은 나의 친구이고, 나의 아버지고, 나의 어머니이고, 내 동생이고, 내 다음 세대가 될 누군가이며,

그리고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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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우리나라를 첫 컬러영상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