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노화에 관하여 -2] : 슈퍼맨 같던 부모님이 어느날 작아보일 때
1. 집안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거의 10년 가까이를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내 동생같은 경우는 좀 더 짧은 기간이였을 것 같은데, 어쨌거나 남들과는 좀 다른 환경에서 자라긴 했다.
아빠랑 엄마랑 연락이 아예 안되는 것은 아니면서도 일단 온 가족들이 서로한테 다소 무심해서 그런가,
나같은 경우는 좀 더 마음속에서 부모님같은 사람들은 어렸을때 항상 봐오던 할머니, 할아버지쪽에 더 가깝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어렸을때의 10년의 기억이 결국엔 나에게 좀 더 강한 기억으로 남는 것 같다.
아주 어렸을때는 할아버지, 할머니 두분이 다 나보다 키가 컸다.
초등학생 3학년때 내 키는 130cm정도나 됐으려나. 아직은 너무 작은 키니깐.
나랑 내 동생은 빨래나 식사나 이런것에서 별로 큰 불편함을 느끼질 못했었다.
아무래도 할머니의 음식이니 세련된 반찬들은 아니였고 반찬투정을 안햇던건 아니지만, 요리 수준이 그래도 나쁘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직도 기억나는것이 할아버지가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했는데, 맨날 남대문 시장까지를 자전거 타고 가서 뭐 이것저것 사오셨음. 근데 순대같은걸 막 한박스씩 사와서 냉동실에 넣어놓고 그 주 내내 순대먹고 그랬음.
뭐 집안 형편이 어렵긴했지만 무슨 다큐멘터리에서 보는것처럼 우리 형제가 밖에 나가서 앵벌이를 하지 않으면 살수가 없다거나 그정도 수준은 아니였다.
할아버지가 전기요금을 워낙에 아낀다? 그냥 집이 겨울엔 좀 추웠다? 이정도. (근데 내 친구들도 다 그러긴 했음.)
어쨋든 거의 내 인생 유년기의 거의 절반정도는 이런식으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멕여 키운 셈이다.
2. 고2때였다. 1학기 기말고사 마지막 암기과목 시험전날 친구와 함께 마지막으로 밤을 새서 불태웠다.
시험을 몇시간에 걸쳐서 보니깐 이상하게 별로 졸려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든 생각이 '맛있는 음식을 거하게 먹고 배가 부르면 잠이 슬슬 오겠지. 그러면 배 통통 두들기면서 실컷 자자.' 이거였다.
그때 내 눈에 바로 회가 들어왔다.
원래 내가 그런거 살때 딱히 할머니, 할아버지를 딱히 챙기는 편은 아닌데 그냥 그날은 광어회를 좀 양껏먹자고 큰 사이즈를 샀고, 우럭매운탕도 하나 포장해서 룰루랄라 집에 들어갔다.
고등학생 치고는 나름 큰 돈을 쓴 셈이다.
마침 할머니, 할아버지는 식사를 안하신 상태였고 같이 회랑 매운탕을 드시기 시작했다.
근데 나는 진짜 그때 충격을 받았다.
진짜 엄청나게 맛있게 잘 드시는게 아닌가. 세상에 회를 그렇게 좋아하시는지 몰랐다.
평상시에 돼지고기도 잘 안드시고, 치킨이나 피자 사오면 "이건 니들이나 먹어라. 나는 별루다." 라고 하시더니 그게 우리 많이 먹으라는 뜻이 아니라 진짜였음.
너무 맛있다면서 음 냠냠쪕쪕 하면서 드시길래 난 좀 충격을 가라앉히고 곰곰히 좀 생각을 해보았다.
할아버지는 방에 들어가서 이제 쿨쿨 주무시고, 할머니는 설거지를 하려고 했다.
나는 그런 할머니를 빤하게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설거지를 하고 있는 할머니에게 내가
"할머니, 나중에 우리 같이 제주도나 놀러갑시다." 라고 했다.
내가 고1때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놀러갔을때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먹었는데 그게 좀 생각이 났기때문이다.
그런데 할머니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햇다.
"아이구. 할머니랑 할아버지 허리아파서 못가."
그렇게 먼곳은 제주도 타고 가기 힘들다는 것이다.
한 5년전쯤에 한번 친척중 누가 보내줘서 다녀왔는데 그때만 해도 힘드셨다고.
나는 처음에 허리아파서 못간다는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를 못했다.
왜냐면 당시 나는 어딘가 놀러가고싶은 곳을 몸이 아프고 늙어서 못간다는 상상을 해본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집은 가난했고, 우리집은 그렇게 놀러가고싶은 곳을 자주 갈 형편은 아니였다.
그래서 난 단순히 가난 때문에만 내가 누리고 싶은 것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게 아니였던 것이다.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은 시간과 싸우고 있었다.
3.
나는 대학에 붙고 이제 자취를 시작했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인천으로 이사를 가셨다.
아무래도 거리가 멀다보니 자주 찾아가지는 못했었는데 어느순간부터 할아버지가 몸이 너무 약해지셨다.
일단 제대로 걷지를 못하신다. 나는 처음에 보고 좀 충격을 받았다.
아니 대체 왜 걷지를 못하시지. 이해가 안되네.
그런데 나이를 생각해보면 오히려 몇년전까지도 멀쩡히 자전거타고, 요리랑 빨래도 다하는게 오히려 더 말이 안됐던 것이다.
그냥 어쩔수 없이 인간이 나이를 먹고, 늙음에 따라 노화와 질병을 얻고.. 다 그런것 아니겠나.
보통 사람들은 본인의 부모님들이 그렇게 되는걸 목격하는데 꽤 나이를 먹고나서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우리 아빠만 해도 할아버지가 그렇게 되는걸 본게 거의 50대 중후반쯤 되서나 그랬으니깐.
그렇게 꽤 나이가 들때까지도 이런 부모님의 노화나 죽음에 대해서 굳이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나는 당시에 25살이였다. 나에겐 이 모든것이 너무나도 어려웠다.
그 전까지도 여러가지 형태의 죽음이 직간접적으로 내 앞에 찾아올때마다 눈앞이 어벙벙 할때가 많았다.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지 않으면 잘 걷지 못하는것도 나에겐 그런 느낌이였다.
4. 요새들어서는 우리 엄마, 아빠가 늙어서 더 이상 걷지 못하는 날이 올것이라고 가정하고 살고 있다.
그리고 나에게도 어느 순간 그런 날이 올것이라고 가정하면서 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날은 실제로 언젠가는 올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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