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 생각

[죽음과 노화에 관하여 -1] : 내가 겪은 죽음들

by 수학댕댕이 2020. 12. 1.

[죽음과 노화에 관하여 -1] : 내가 겪은 죽음들

 

1. 내가 중학교 2학년때, 11월이였다. 지금은 잘 기억 안나는데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외할아버지는 담배를 많이 피시는 분이셨고,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엄마가 할아버지한테 전화를 했는데 할아버지는 딱히 나를 그 장례식장으로 데려가지는 않으셨다.

그냥 그 사실만 전달해서 들었고, 엄마는 나중에 조금 그게 할아버지한테 서운하셨나보다.

 

사실 외할아버지는 그 이전에 두번정도밖에 뵌적이 없어서 별 생각이 없었다.

난 중학생이였고, 그건 나에게는 아직 죽음이 아니였다.

그냥 [어떤 남자가 일생을 살다가 죽었다.]라는 사실명제 정도밖에 안되었던 것이다.

 

 

 

 

2. 대학교 1학년 끝나고 1월즘이였나 적당히 추운 겨울이였다. 나는 과외를 마치고 지하철을 타기위해서 버스를 타고 가는 중이였다.

이 버스는 탈때부터 벌써 심상치 않았다. 아저씨가 빨리 집을 가고 싶어서 안달이였고, "학생 어서타!!" 하면서 굉장히 쌩쌩 달리고 있었다.

나는 어차피 금방 내릴 것이기때문에 중간쯤에서 막대를 잡고 엉거주춤하게 서있었다. 여자친구랑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2분이나 지났을까?

한 여자가 아주 짧은 횡단보도를 무당횡단을 하면서 건너는데 버스가 너무 빨라서 멈추질 못했던 것이다.

버스기사는 욕을 하면서 핸들을 휙 하고 왼쪽으로 틀었고, 나는 앞의 버스 유리로 그 여자가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았다. 그 여자는 수면바지 같은 옷을 입고 있었고 눈이 좀 컸다.

그렇게 사고가 났고 그 여자는 버스 아래에 깔려있었다.

사고나신 분의 동생으로 보이는 분은 울고 있었고, 그 아버지로 보이는 분도 껴안고 울고 있었다.

버스기사도 나와서 담배피면서 "아 왜 하필 나냐." 라고 하면서 엉엉 울면서 담배를 피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이 전부 내가 버스를 탄지 3분도 안되어서 일어났다.

 

나는 정말 너무 당황했는데 내가 어버버버하면서 말하니깐 여자친구가 빨리 그 자리를 뜨라고 했다.

나는 이유는 몰랐지만 일단 그 말을 들었는데 오는 내내 기분이 매우 이상했다.

 

그 다음주에 그 과외를 갔을때는 그 횡단보도에 "무당횡단 금지. 사망사고 발생지점" 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그게 사실상 첫번째로 경험한 죽음이였다.

 

 

 

 

 

 

3. 내가 22살 가을쯤에 만난 여자가 있다.

처음 한 1년동안은 정말 불타듯이 만났는데, 당시 나는 반쯤 미쳐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시간이 아까운데, 그런 후회는 더 이상 안하기로 했다.

어쨌든 나는 그때 무의식중에 "내가 정말 이 여자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나는 그때까지는 죽음을 조금 가볍게 생각하고 있엇다.

 

 

4. 그 여자의 바람기때문에 굉장을 고생을 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추석때 자취하는 곳에서 늦잠을 자고있는데 갑자기 문자로 친구중 한명이 죽었다고 지금 장례식이라고 문자가 온 것이다.

이 친구와 다 같이 친한 그룹이 있었는데, 이새끼들이 진짜 장난을 엄청나게 많이 치는 애들이였다.

심지어 그 친구는 나를 처음 만나는 날 통성명도 안 한 시점에서 내 가방을 숨기는 장난을 쳤었음.

 

나는 이게 무슨 또 말도 안되는 장난을 치고 있나 하고 아무 생각없이 전화를 눌렀다.

그런데 그 친구의 어머님이 울면서 받으시는 것 아닌가.

나는 상황파악이 안되는 상태에서 "어.. 어... 아니.." 이런 말만 남발하면서 아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랬다. 내 친구는 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택시타고 강남역에서 자취방으로 오던 길에서 한참 벗어나있는 길에서 이 친구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간에 누나분께 전화해서 내가 지갑이 없어졌다는둥, 택시비가 없다는 둥 횡설수설했다고 한다.

(이게 말이 안되는게 그 택시를 타던 순간에 당시 여자친구분이 지갑이 있는걸 두 눈으로 확인했다고 함.)

다른 곳에서 도로위에 누워있던것을 다른 택시기사에 의해 차 밑에서 발견된거임.

신발이 엉뚱하게 먼곳에서 발견된것도 그렇고 굉장히 찜찜한 사건이다. 내 추정으론 첫번째 택시기사가 강도짓을 한것이 아닌가 싶은데, 추적이 어렵기도 하고 경찰조사는 그냥 사고사로 마무리 된 것 같았다.

 

그런데 뉴스에서는 그냥 "웬 철없는 20대 남자애가 술마시고 도로위에 누워있다가 택시에 깔려서 죽었음. 택시기사 불쌍함." 의 뉘앙스로 제목을 걸었고, 실제로 댓글에 내 친구를 비난하는 글들이 많았다.

나는 기분이 좆같았다. 실제로 그 그룹 친구들도 이 이야기를 좀 하는 것 같더라.

가족분들에게는 얼마나 상처였을까.

 

그 이후로 그 친구네 아버님, 어머님등과 종종 만나뵙고 식사도 하고 했다.

그런데 너무 좋으신 분들이다. 어머님도 너무 좋고, 아버님 같은 경우는 우리 아빠보다도 훨씬 아빠같은 분임.

나 말고도 내 친구들도 다 그 이야기함.

 

개인적으로 나는 그 친구랑 막 best best 최고의 절친 이정도까진 아니였지만, 그래도 이 사건은 나에게 꽤 충격이였다.

왜냐면 이 친구랑 나랑 별로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같은 나이에, 같은 학교에, 같은 나라에서, 비슷한 지역에서 살고 있었고.

생각도 비슷하고, 뭐 하는 짓도 다른 애들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20대 초반의 남자였다.

그러나 그 친구는 죽었고, 난 죽지 않고 살아있다.

이 모든건 우연한 이유때문이였다.

난 이게 꽤 오랫동안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5. 며칠뒤 엄마가 갑상선 암을 초기를 선고 받았다.

난 그 이후로 정말 심각하게 우울증을 겪게 되었다.

친구들도 다 군대에 가 있었기때문에 우울증은 날이 갈수록 더더욱 심해져갔다.

 

다행히 갑상선 암은 그래도 초기에 잘 발견하면 비교적 치료를 잘 할수 있는 암이였고, 거의 7년정도가 지난 지금은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다.

 

 

6. 당시의 여자친구는 계속 바람끼를 보여주고 있었고, 나는 이것을 컨트롤 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

혼자서 등신찐따처럼 끙끙 앓으면서도 싫은 소리도 잘 못하고 그랬었음.

그러다가 2014년 3월 4일, 충격적인 일을 겪게 되었다.

뭐 자세하게 쓰고 싶진 않고, 어쨌든 내가 울면서 "너 대체 왜 그러느냐" 라고 할때 그 친구는 나에게

"니가 뭔데? 니가 내 남자친구야? 나 그 오빠 사랑해." 라고 했다.

 

이미 예전부터 내 심리상태는 여러 이유로 정상이 아니였다.

나는 살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나가서 아무 생각없이 울면서 방황하고 있었다.

문제는 새벽 2시에 갈 곳은 정말 아무데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던중 횡단보도가 보였고, 저기 멀리서 트럭 한대가 오고 있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아 진짜 여기서 확 뛰어들면 조금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위험한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정말 이것에 1% 정도 진심의 마음을 가지고 상상을 해보았을 뿐인데,

정말 소름이 돋게 무서워지는 것이였다.

내가 죽을 수도 있겟구나 하는 사실이 더 이상 가짜 사실이 아니였다.

개쫄보였던 나는 당연히 죽지 못했지만 그때 무엇인가를 느꼈다.

그때 외할아버지와 그 해 겨울에 보았던 그 여자와 사고로 죽었던 내 친구가 생각이 났다.

나는 "내가 정말 이 여자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 라고 생각했지만, 별로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난 이걸 잘 이해하고 있지 못했었다.

 

 

 

 

7. 2014년 4월 세월호 사고가 터졌다. 난 이때 이미 아무 생각이 없었다.

사람들이 악마로 보이기 시작했다.

 

유명해지려는 사람.

이걸 통해 한몫 챙겨보려고 하는 중소기업 사장.

사실이든 아니든 일단 그런 것들을 내보이려고 하는 방송사.

그리고 이 기회를 잡아 무엇이려든 해보려는 정치인들. 

 

 

 

 

8. 그 해에 나는 훈련소로 들어갔다. 훈련소를 나와서 그 이후에 결국 그 여자가 한번 더 바람기를 보여주며 (에휴. 계속 만난 내가 미친놈이지...) 결국 그 인연은 끝이 났다.

그리고 몇달 뒤 훈련소 동기중 한명의 어머님이 상을 당하셔서 가게 되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서 내가 그동안 어떤 죽음을 겪었었나 하나 둘 곱씹어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2014년이 지났다.

 

 

 

 

그리고 그 해 겨울, 우리 할아버지가 조금 약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