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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죽음과 노화에 관하여 -4] : 흘러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by 수학댕댕이 2020. 12. 4.

[죽음과 노화에 관하여 -4] : 흘러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1.  "대체 죽음같은걸 왜 생각을 하는거야??"

 

내 친구중 한명이 했던 질문인데 나는 이건 꽤 날카로운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친구 말로는 어차피 나는 죽고나면 의식이 없어질 것이고, 그러면 죽기 전에는 마치 죽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면서 살다가 죽으면 되는거 아니냐고. 

 

[모든 인간이 언젠간 죽는걸 알지 그래. 근데 어쩌라고. 맨날 그것만 생각하고 있으면 뭐가 답이 나와? 그리고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다들 열심히 살겠어? 근데 문제는 진짜 당장 내일 안 죽을 경우가 꽤 많잖아? 그러니깐 그냥 죽음같은건 생각하지 않는게 나아.]

 

맞다. 그리고 실제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전략을 쓰면서 살고 있다.

죽음에 관해서만 질문을 했을때 생산적인 대답을 얻는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면 죽음이란 것은 결국엔 끝을 의미하고, 아직 인간이 죽음을 피한 역사는 없기때문에 그렇다.

 

나름대로 말이 되는 이야기다.

 

 

 

 

2. 그렇지만, 한편으로 그 죽음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경험도 많이 일어난다.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의 해온 논의들도 많은 것 같다.

10년이 훌쩍 지난 아직까지도 회상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아마 이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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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스티브잡스의 2005 스탠포드 명연설 [Stay Hungry, Stay Foolish.] 

 

나는 이걸 처음 중3때 과학선생님이 틀어주셔 보게됐다. 그당시의 나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세월이 많이 지나고나서 다시보니 지금 나에겐 여러 다른 이야기보다도 세번째 이야기가 가장 인상깊었다.

바로 스티브잡스가 췌장암을 진단받으며 생각한 죽음에 관한 이야기. (동영상으론 8분 43초부터)

 

 

동영상을 보는게 좀 귀찮은 사람들을 위해서 몇군데만 좀 자막을 퍼와본다면,

 

 

 

 

나도 정말 어느순간부터 항상 이런식으로 판단할때가 많음.

사람이 죽음을 겪고 나서는 다들 어느정도 비슷한 생각을 하나보다.

 

 

 

 

 

 

나는 중간에 나온 말중 이 문장이 가장 와닿는다.

"모든 외부의 기대, 자부심, 수치스러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죽음' 앞에서 모두 떨어져나가고, 정말로 중요한 것들만 남기 때문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우리는 대부분 평상시에 죽음에 대해서 그렇게 깊게 생각하며 살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전략이다. 죽음에 대해서 계속 생각만 하다보면 정말로 회의주의에 빠지고 비생산적인 생각으로 수렴하게 될테니깐.

 

 

그런데 잘 생각해보자.

우리는 무엇인가를 선택할때, 어떤 근거를 가지고 판단한다. 그게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다.

그것은 남들의 시선일수도 있다. 근거가 되는 어떤 말을 한 사람의 권위, 외모, 친밀도일 수도 있다. 본인에게 남은 자존심일 수도 있고, 사회에서 요구되는 관습일수도 있다.

 

그런데 그 근거되는 것들이 정말로 중요한 것들인가?

오해하지 말아야할 것이, 나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하려는게 아니다.

정말 그것이 중요한지 '생각을 해본적이 있냐'는 뜻이다.

 

결국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떨어져나가고 중요한 것만 남는다는 말은,

너의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우선순위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2-1.

예를 들어서, 내 주위에는 이상할정도로 지도교수님에게 본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잘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말은 못하면서 "속으로는 끙끙" 하며 괴로워한다.

그런 것들은 보통 말하기 껄끄러운 문제들이 많다.

뭐 예를 들어서 연구비문제 라던가 현재 연구방향이 잘 안된다라던가, 아니면 교수님이 말씀한 무언가가 사실 틀렸다라던가 등등 말이다.

 

그런데 난 좀 잘 이해가 되지 않는게, 대학원생활은 어느정도는 제한시간이 있는 활동이다.

너무 오랫동안 성과없이 대학원생활이 보내면, 애초에 자기소개서(CV)에서부터 망가져버림.

그래서 수학활동을 하고 싶어도 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최대한 이 기간내에 나를 발전시키려는 태도가 중요함.

그럴려면 연구비좀 주실 수 있냐 이런 말도 할줄 알아야하고, 내 생각엔 이게 맞는것 같은데 교수님 생각이랑 다른 것 같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런 말도 할 줄 알아야한다. 그런데 보면 그런 말을 잘 못한다.

나한테는 이게 너무 신경쓰는게 많다는 인상을 받는다.

 

물론 어른한테 먼저 돈 얘기하고 그런게 사실 한국에서 쉽지 않은 이야기기도 하고, 나보다 수학 훨씬 잘 하는 사람한테 틀린것같다고 말하는게 사실 쉬운 이야기가 아니긴 하다. 

그러나 이런 말하는게 껄끄럽다고해서 진짜로 안해버리는건 현재 내 관점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런 이야기를 해봐도 "에휴.. 그래도 그런걸 교수님한테 어떻게 말해요.." 이러고 있더라고.

미안하지만 시간은 지금도 흐르고 있다.

 

 

 

 

 

2-2.

혹은 교수님한테 혼났다고 했을때 그 사실 자체에 굉장히 critical하게 상처를 받는 사람들도 많다.

역시나 이해는 된다. 그게 그렇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니깐.

그런데 심지어 완전히 누가 봐도 뻔히 보이는 진리를 부정하고 "그 교수님이 나를 별로 안 좋아한다." 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던데, 내가 가진 가치체계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같은 경우는 그냥 굉장히 딱딱하게 그 사람이 한 말중 사실관계만 파악해서 나한테 도움이 되는 말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만 판단을 한다. 그리고 사실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나머지는 뇌에서 지워버림.

 

 

 

예를 들어서 어떤 교수가 시험지를 보면서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고 해보자.

 

"너는 지금 이거를 잘 이해를 못한것 같은데? 지금 이 부분은 더 자세하게 설명해야하는데, 뭔가 대충대충 설명하고 넘어갔잖아. 이러다가 틀리면 나중에 대형사고 난다고. 아 지금 이해를 하나도 못하고 있는것 같은데.. 열심히 해야지."

 

교수라는 사람도 굉장히 숫자가 많고 다양하다보니 별 유형의 사람들이 다 있다.

약간 순화하긴했지만, 위에 나온거보다 더 강하게 뭐라고 하는 사람들도 가끔씩 존재한다.

그러면 이제 보통 이런 말이 당연히 듣기에 기분 좋은 말이 아님.

 

그런데 일단 사실 관계를 파악해보자. 

내가 이해를 못한게 맞나? 내가 생각하기에 그렇다고 한다면, 그럼 받아들이고 이제부터 이해를 하면 됨.

만약 사실은 내 생각에 이해를 잘 했는데 귀찮아서 답지를 대충 쓴거라고 해보자. 그런데 교수가 좀 과민반응을 한거라고 해보자. 그러면 괜히 거기에 대해서 부득부득 이를 갈게 아니라 속으로 '하이고 교수님. 네네. 알겟심더. ㅎㅎ' 하고 그런 말들은 다 뇌에서 삭제하면 됨.

 

 

심지어 나는 반대로 누가 나한테 좋은 말을 해준다고 해도, 그것의 사실관계를 생각해보고 그게 별로 내용이 없으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만약 누가 나한테 힐링하는 류의 메시지로 "너 지금 매우 잘하고 있어! 화이팅!" 이러면 그냥 뇌 속에서 지워버림.

별로 정량적이지도 않고 사실이라기보단 구호에 가까운 그런 말을 굳이 받아들여야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한테는 그런 메시지가 별로 중요하지가 않다.

그런게 정말로 중요한가? 어떤 사람들은 굉장히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더라.

그래서 심지어 자기 자신을 속이는 행동까지도 하는 것 같다.

누가 봐도 본인이 잘못해서 망하는 길로 가는 중인건데, 그걸 남의 탓을 하고 있는 것이다.

10년뒤에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는 불보듯이 뻔하다.

그런데 내 관찰에 의히면, 보통은 그 먼 미래를 생각한다기보단 지금 당장 그 감정적인것을 대처하는것이 너무 힘들기때문에 그렇게 정신승리를 해버리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감정적인것이 왜 그렇게 중요하지?

나는 그것이 만약에 진실을 가리고 있고, 내 약점과 내 장점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안되는 메시지라면 그냥 값싼 동정이나 그런건 별로 필요가 없는 것 같음.

그래서 그런 메시지들은 적당한 수준으로 뇌에서 필터링으로 거른다.

 

 

 

2-4.

나는 심지어 어떤 생각까지도 하냐면, 내가 대학원생활을 하다가 망해버려서 박사학위를 못딴다고 해도 적당히 건강하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면 뭐 그 인생이 그렇게까지 나쁜가 이런 생각도 든다.

어차피 죽기전에 내가 한번 해볼수 있는 도전 해본것이니깐. 그게 그렇게까지 큰 실패로 규정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다.

물론 이게 정신승리로 연결되면 안된다.

나한테는 그래서 가장 중요한건 그냥 박사기간 내내 일정 시간동안 내가 만족할만큼의 양정도는 꾸준히 공부하는 것이다.

이것만 만족하면 나는 내 결과가 어떻게 되던간에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음.

그런데 그런 본인 스스로 세운 내적인 기준보다는 지금 당장의 긍정이나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남이 주는 메시지등에 일희일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다시 한번 스티브 잡스의 말을 상기해보자.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느라 당신의 인생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3.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아까 처음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대체 죽음같은 걸 왜 생각하는거야??"

좋은 질문이다.

 

내가 사실 이걸 생각하고 싶어서 생각을 시작한건 아니다.

어떤 여자관계에서의 실패가 나를 거의 자살로 몰아넣었고, 그리고 그때부터 죽음이 나에게 진짜로 다가오기 시작한것이다.

내가 별로 생각하고 싶어서 한것이 아니다.

잡스는 뭐 췌장암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어서 생각했겠나.

그래서 보통 직접 이런것들을 경험하기 전에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기가 쉽지가 않다.

왜냐면 그래야할 이유가 없으니깐.

 

 

 

여러 해의 고민 끝에 나는 이 질문에 대해서 굳이 답해보자면, "그게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니깐." 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나는 이 전까지 거의 반쯤은 아무 생각없이 살지 않았나 싶다.

무엇이 내 인생에 더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을 해본적도 없고 말이다.

 

우리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데 적절히 좋은 대인관계도 필수적일 것이다.

한때 나를 거의 자살로 몰아갈 정도로 힘들었던만큼, 나는 이 질문의 대답에 대한 갈증이 심했다.

그리고 아래 대나무숲의 글이 이에 대한 적절한 대답이 될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