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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공부 이야기/대학교 수학과에 관한 이야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학자, John Nash

by 수학댕댕이 2020. 11. 29.

John Forbes Nash, Jr. (이하 존내쉬)

어렸을 때 Beautiful mind (2004) 라는 영화를 보셨다면, 웬 순박한 너드킹 수학자가 연구를 하다가 정신분열증을 일으키다가 역경을 이겨내고 노벨경제학상을 받게 된다. 뭐 이런 이야기라고 생각하실겁니다. 그러나 실제 존내쉬에 대해 알려진것은 영화와는 조금 차이가 있었습니다.

 

1. 유년시절은 어떠했는가?

1928년생. 저희 할아버지보다 한 해 늦게 태어나셨군요.

뭐 워낙에 업적이 엄청나기 때문에, 어린 시절 일화가 그렇게 많지는않습니다.

아버지와 엔지니어, 어머니는 교사로 평범한 편이였죠.

뭐 근데 17살쯤 명문대 입학해서 학사 및 석사를 21살쯤 졸업하면서, 프린스턴 대학 대학원에서 역대 최고 장학금을 받고입학했습니다. 저는 붙여만 줘도 손발을 벌벌 떨면서 눈물을 주룩주룩 흘릴 곳인데 말이죠.

참고로 이때 추천서에서 교수가 한 줄로 “He is a mathematical genius.” 라고 쓴 것은 매우 유명한 일화죠.

하 ㅅㅂ 이게말이 되나.

 

사실 저희는 아니 21살에 박사를 시작했다고? 와우!”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아직 이야기는 시작도 안했습니다. 저때만 해도 대학이라는게 아무나에게 열려있는 제도가 아니였고, 지금보다 좀 더 우수한 학생들을 데려다놓고 후다닥 가르치는 시스템이였던것으로 보입니다. (, 나이 자체는 그렇게 extraordinary 한 것은 아니라는 점)

 

 

 

2. 성격은 어땠는가?

완전 괴짜였다고 합니다. 막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소리를 지르고, 온 힘을 다해서 친구들 등짝을 때리는 둥 뭔가 괴상한 행동을 어렸을 때부터 많이 했다고 합니다. 이상한 장난도 많이 쳤다고 알려져 있었는데요.

예를 들면, 갑자기 존내쉬가 악수를 청해서 아무 생각없이 악수를 받으면 갑자기 전기가 지릿하게 세게 오른다거나. 깜짝놀래서 뭐냐고 소리지르니손에 스위치를 누르면 전기가 통하는 장치를 교묘하게 설치를 해놓았다던가요. 저였으면 이런 친구는 정말 안 좋아했을텐데요.

그리고 대수를 별로 안 좋아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프린스턴에서 열리는 대수수업 시작 전에 칠판에 크게 대수는 쓰레기다.” 라고 적어놓는 기행도 일삼았다고 합니다. 당시 대수 교수가 EmilArtin 이라는 그 분야의 대가였는데, 정말 불같이 화를 내고 내쉬를 정말 싫어했다고 합니다.

필즈 메달리스트 존 밀노어의 말을 들어보면, (이사람도 개쩌는 사람임. 수업시간에 늦게들어와서 칠판에 써있는 문제가 숙제인줄 알고 3문제 중 2문제 풀었는데 알고보니 매듭이론에서의 난제였음) 내쉬는 수업을 많이 듣지 않았는데 놀라울 정도로 독창적이였다고 합니다.

그 수업 들을 시간에 관련된 소재만 친구들한테 말로 듣고나서 본인이 스스로 엄청나게 생각을 해보는걸 즐겨했다고 하더군요. 재밌는건, 내쉬가 생각하는 방향이 실제로 그 수업이 흘러가는 방향과 일치하던 때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뭐 그 외에도 여러 여자에게 나쁜 남자였고, 약간 들어보면 특이한 썰이 참 많습니다.

확실한건 영화에 나온 모습처럼 뭔가 어리바리하고 그런 이미지는 전혀 아니였다는 것.

 

아무짤

 

3. 영화를 보면 존내쉬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던데?

 아까 21살 때 프린스턴에 입학했다고 했죠. 그리고는 23살 때 그 유명한 비협력게임 이라는 논문을 쓰게 됩니다. , 44년 뒤 노벨 경제학상을 받게 되는 그 논문입니다. 이것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사실 수학과 학생이 대체 노벨경제학상을 받을까? 하고 궁금할 수 있는데, 경제학은 박사수준으로 가면 싹 다 수학입니다. 경제학중에서도 아주 일부분의 문제를 독창적으로 해석하고 그것에 대한 수학의 이론을 만들고 증명 해낸 것이죠.

그런데 사실, 이것도 영화와 조금 차이가 잇는 부분인데, 당시만 해도 이 업적은 그렇게 큰 것으로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영화에서는 무슨 아담스미스의 수백년된 이론을 깨는 비장의 무기정도로 이해되고 있는데, 막상 내쉬가 그 논문을 냈던 당시에는 프린스턴 수석입학생가 쓴것 치고는 그저 그런 논문 정도으로 여겨졌음)

 

이것에 관해서는 유명한 썰이 있는데, 존내쉬가 폰노이만에게 막무가내로 찾아가서 비서들 다 제끼고 폰노이만한테 본인이 한 것을 설명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폰노이만이 웃으면서 한번 들어나보자 했는데, 내쉬가 발표를 시작한지 10초도안되서 폰노이만이 삐딱하게 앉아책상을 손가락으로 톡톨 두들기며 그래서 자네가 한건 그냥 Fixed point theorem이라는거 아닌가." 하죠.

이것은 너가 박사학위로 받은 결과물을 나는 10초만에 이해할 정도의 레벨이다' 라는 선언이였고, (물론 그걸 해결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는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그리고 사실 실제로 노이만의 말이 맞았습니다. 약간 내쉬를 망신주려는 의도였겠죠. (물론 내쉬는 전혀 굴하지않고 다른 문제를 찾아다닙니다.)

 

이 논문의 가치는 나중에 여기저기 응용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비로소 재조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업적으로 내쉬는 44년 뒤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4. 그럼 수학에서는 뭘 했나요?

이게 진짜 골때리는데요.  사실 내쉬의 전공이 뭐냐고 물으면, 뭐라할 말이 없습니다.

23살 때, 비 협력게임 등 4개정도의 경제학 관련된 문제에 대한 논문을 썼고, 학교에서는 수업도 뭐 잘 안 들었고, 사실 전공이 뚜렷히 뭐다 라고 말할만한게 없어요.

그러던중, 본인이 박사학위를 받고 이제 뭘 해야하지? 하고생각을 하다가 그때 당시에 가장 중요하고, 필즈메달 급의 파급력이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찾았습니다.

그때 바로 기하학 분야에서있던 매장 문제 라는 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내쉬는 갑자기 분야를 바꿔서는,  1~2년정도 도전하더니 25살의 나이에 증명을 해버렸습니다. ‘매장정리’ (embedding theorem) 이라고 불리는 것인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이 사람이 대체 박사학위를 받는 내내 기하학에대해서 뭘 알았겠습니까.

 

그렇게 MIT에서 계속 강의를 하다가, 필즈상을 받기 위해서는 지금 이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하구나, 하는생각에 다른 문제를 더 찾았습니다. 그러던중, Louis Nirenberg라는 편미분방정식 이론의 대가에게 찾아가 지금 어떤 문제가 가장 중요하냐고 물어봤습니다. 1900년에 Hilbert가 수학자들이 풀어야할 23개의 난제들을 제시했는데, 그 중 19번째 문제가 아직 안 풀린 상태였고 이게 편미분방정식의 이론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참고로 Hilbert 23문제에는리만가설과 페르마 마지막 정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쉬는 정말 몇번이고 이게 정말 중요한 문제냐고 묻더니, 이내 이 문제를 풀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아니 무슨 게임하는 것도 아니고

 

여러분, 다시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이 사람 박사학위로는 경제관련된 어떤 수학문제를 공부했고, 그 이후에 몇 년동안 기하학에 관한 문제만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대체 편미분방정식에 대해서 뭘 안다고, 쥐뿔도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이 분야의 난제를 증명하겠다고 덤빈다는 겁니까?

 

 

처음엔 Nirenberg 에게 이상할 정도로 쉬운 질문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Nirenberg가 좀 짜증도 냈다고 해요.

이런것도 모르냐고. 내쉬는 정말 꿋꿋이 계속 질문을 하고 사라졌다가 나타나서 다시 질문을 하고, 몇 개월 지나서 조금 어려운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좀 생각해봐야하는 그런 질문들. 그러더니 나중에는 쉽지 않은 질문들위주로 하더니 어느날 갑자기 잠적했다고 합니다.

이듬해봄, 약반년의 시간이 지난뒤에 그 난제를 풀었다고 나타났습니다.

아아... 정말이지.. 놀랍죠.

 

 

 

아무짤2

 

 

 

5. 그런데 왜 정신분열증에 걸렸나요?

 

문제는, 이 50년 넘게 미해결이였던 문제를 내쉬가 풀기 불과 몇 개월 전에 이탈리아의 무명 수학자였던 DeGiorgi (이하 드조지) 라는 사람이 풀어버렸다는 겁니다. 참고로 내쉬와 드조지의 접근법은 다른 것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이탈리아의 지방에 있는 수학 저널에 이걸 내는 기괴한 짓을 한거에요. 약간 이게 어떤 느낌이냐면, 우리나라로 치면 [충청도 수학학회지] 같은데다가 세계적인 난제를 풀어서 낸겁니다.

그러니깐, 이게 알려지는데는 인터넷도 없었던 당시에는 이탈리아의 결과가 미국까지 전달되기에는 시간이 꽤 걸렸겠죠. 그러나 워낙에 파급력이 큰 문제였기때문에 내쉬가 발표를 한지 얼마 뒤에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여기서 내쉬가 조금 갈등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게 필즈상을 받기는 조금 애매해진게, 둘의 접근법이 달랐다고 해도 확실히 드조지가 먼저 한 것이 맞거든요. 그래서 미국에서 주는 보쳐수학상이라도 받고 싶었던 내쉬는, 이 논문을 철회하고 보쳐수학상을 받기위한 적절한 저널에 논문을 냈습니다.

그런데 그 보쳐수학상은 아까 말했던 당시 PDE의 대가 Louis Nirenberg가 받아버림.

 

정말 필즈메달급의 큰 업적을 세웠는데도 아무 상을 못받은 내쉬는 큰 충격을 받더니 점점 정신이 이상해졌습니다. 결국에 나중엔리만가설을 증명했다고 주장하다가, (아니 또 리만가설에 도전했단 말야?) 공산당이 어쩌구 저쩌구 충격적인 소리를 하면서 정신병원에 실려감.

 

 

 

 

 

6.근데 왜 제일 좋아함?

 

그가 증명했던 수학정리들이 가지는 의미가 엄청납니다. 뭐랄까, 이건 열심히 계산해보고, 차근차근 잘 공부한다고 얻어낼 수 있는그런것들이 아니에요. 저는 내쉬의 업적들을 몇 개 좀 공부해보고난 뒤부터 천재란 것에 대한 정의가 완전히바뀌었습니다.

저는 원래 기억력이 좋거나, 그래서 시험을 보면 수능을 거의 400점 만점에 398점정도를 우습게 받는, 그런 것을 천재 쯤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물론 이것도 절대 쉬운게아니고 탈인간적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그래도 뭔가 내가 한 30년하면 장인정신이 생기면서 398점은 아니여도 수학, 영어 200점은 못 받을까? 하는 생각이 들죠. (물론 30년 할 가치가 없으니깐그러니깐 그 경지에 올라가는 속도가 중요해지는 게임인거죠.)

 

그렇지만 이 사람의 결과는 그런게 아니에요. 전혀 기존에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기존과는 전혀 다른 그런 독창적인 접근으로 문제를 푸니깐 과연 내가 30년이 아니라 평생동안 이것을 고민한다고 해도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푼다는걸 생각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거죠. 속도가 문제가 아니에요. "평생을 해도 할 수 잇냐?" 하는 문제인거죠.

 

우리가 1000km 를 가야한다고 하면, 빨리는 못 가겠지만 꾸역꾸역 하면 언젠가는 갈 수 잇겠다는 생각이 들지요. 그렇지만 모짜르트의 음악을 평생동안 꾸역꾸역 한다고 만들어낼 수 있는 경지가 아니듯이, 내쉬의 수학도 뭔가 그런 방향이였습니다. 전 여기에서 천재라는 정의를 좀 다르게 생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오늘날 편미분방정식의 분야에서는 드조지와 내쉬의 방법론으로 씌여진 논문만 정말 글자 그대로 수천개입니다. (그 방법론을 다른 조금 쉬운 편미방문제에 조금 변형하거나 거의 그대로 가져다 써서 풀어버리는 방식으로 해결된 논문이, 글자 그대로 수천개임. 지금도 사용되는 method임)

천재란건 기존에 있는걸 빠르고 쉽게 학습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자기가 방법론을 만들어버리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천재라는게 바로 이런거구나 하는 인상을 처음으로 심어준 사람이고, 또 제 분야에서 굉장히 중요한 결과를 만들어낸 사람이다보니깐 개인적으로 좀 애정이 가는 인물이네요.

그렇게 그는 이 편미방 분야에 대한 업적으로 2015년에 아벨상을 받고 집에 가던중 아내와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오늘의 수학자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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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포만한에 썼었던 글